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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뉴스

주머니 조끼+엉덩이 쿠션 “내 옷차림 어떻수?”

주머니 조끼+엉덩이 쿠션 “내 옷차림 어떻수?”

<위에서 부터>썬캡과 토시 등으로 햇빛을 철저히 가린 할머니들이 수확한 마늘을 손에 들고 수줍게 웃고있다. 할머니들이 일손을 잠시 놓고 빵과 주스, 막걸리로 새참을 먹고 있다. 할머니들이 엉덩이에 간이의자를 매달고 전남 고흥의 한 마늘밭에서 햇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고흥 마늘밭서 엿보는 우리 농촌 ‘새 풍속도’

“어이, 주변에 돈 많은 홀애비 없든가?” 

“워메, 그런 영감 있음 내가 먼저 채 가겄네!”

 햇마늘 수확이 한창인 전남 고흥군 도덕면 오마리 은전마을. 일렬종대로 쪼르르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마늘을 뽑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이 비슷비슷하다.

고무줄 바지에 깃 있는 셔츠를 입고 조끼를 걸쳤다. 머리에는 햇볕을 가리는 썬캡과 수건, 팔과 발목에는 토시를 꼈다.



●수확철 패션…썬캡·수건 기본·조끼 인기품목

이게 바로 ‘수확 패션’일까. ‘한 패션’ 하는 것 같아 뵈는 최송지 할머니(72)에게 물었다.

최할머니는 “수확 패션의 핵심은 주머니 많은 조끼”라고 일러 줬다. 일하다가 휴대전화며 목장갑을 그때그때 꺼내기에는 조끼가 제격이라는 것. 옆에서 이정자 할머니(64)가 한마디 한다. “그뿐인감? 나처럼 가슴 큰 사람은 개릴(가릴) 수도 있제!” 밭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조끼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할머니들 엉덩이에 하나같이 붙어 있는 간이의자다. 작업용 방석, 보조쿠션이라고도 불리는 이 의자는 밭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둥근 스티로폼이나 스펀지를 비닐·천 따위로 싸서 만든 것으로, 속옷 입듯 착용하면 작업이 한결 편하다.

장난기 많은 장애심 할머니(69)는 일하다 말고 엉덩이에서 덜렁거리는 의자를 이리저리 흔들며 흥겨운 춤사위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늘도 없는 밭에 종일 있는 만큼 챙 넓은 썬캡은 필수. 복면을 하듯 수건으로 얼굴 아랫부분을 감싼 장형덕 할머니(74)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밭일 해 묵고 살아도 모임 가면 창피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개리는 것이여. 늙은 사람이 끄스러지면(그을리면) 더 추접스러운께.”

 할머니들의 손이 지나간 자리로 마늘이 줄 맞춰 널렸다. 뽑은 마늘은 밭에 3~4일간 널어 둔다고. 공판장 개장을 앞두고 밭에 온 이재승 녹동농협 차장은 “볕을 쬐고 비도 맞아야 알이 여물면서 껍질에 붉은빛이 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참도 빵·음료수로…품앗이 자취감춰

 “샛거리(새참)들 들고 허세! 어이 호랭이~ 이리 와서 막걸리 한잔 받소!”

 오후 3시, 호랑이띠라서 호랭이라 불리는 박형민 할머니(74)가 잠시 허리를 폈다. 마늘종무침을 안주 삼아 나눠 마시는 막걸리 한모금에 노동의 고단함도 반감된다.

 막걸리, 마늘종과 함께 먹은 이날의 새참은 농협에서 주문한 단팥빵과 사과주스. 아낙이 국수를 말아 머리에 이고 오던 그 옛날 새참은 이제 빵과 주스로 바뀌었다. 다른 밭이었다면 중국집에 자장면 배달을 시켰겠지만 이 밭은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시켜도 배달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태심 할머니(63)는 “본래 새참으로는 밥이 제일로 든든헌디…”라며 빵을 나눠 주는 밭 주인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얼음 동동 띄운 식혜의 자리는 배달된 막대 아이스크림이 대신했다. 할머니들은 비닐봉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밤맛, 팥맛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요기를 하고 다시 밭에 앉은 할머니들 틈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영자야~ 감자 삶아라~♪ 기왕이면 큰 놈 삶아라~♬” 손영자 할머니(64)의 이름을 가지고 노래로 놀리는 것이 영락없는 여고생들 모습이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일하는데 노래라도 해야 덜 힘들다”고 누군가 귀띔했다.

 사실 이날 밭에 모인 15명의 할머니들은 고흥 토박이가 아니다. 수확 일을 하러 전남 순천에서 ‘원정’을 온 것. 자기 밭도 있지만, 남의 밭으로 일을 다니는 것이 돈벌이가 더 되기 때문이란다. 할머니들은 오전에는 여우비를 맞으며, 오후에는 땡볕 아래서 총 10시간을 일해 일당 8만원을 받았다. “촌부자는 일부자여.” 장애심 할머니가 한마디 했다. 농촌에서는 투기 같은 편법을 쓰지 않고 땀 흘려 일해 돈을 번다는 뜻이다.

 오후 6시, 할머니들은 승합차를 타고 순천으로 돌아갔다. 내일도 오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타박조의 멘트를 날리며.

 “와야제! 뽑은 놈(마늘) 작두로 자르고, 크기별로 개리고, 50개씩 묶고, 망에 담고. 아따 할 일이 겁나게 많구만!”

◇취재협조=전남 고흥 녹동농협(조합장 김광선)

고흥=김인경 기자 why@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