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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도 농업이!

김인경 기자 ‘도시농부’ 도전기 (5)채소 지주로 ‘나무젓가락’을 준비하다니…

김인경 기자 ‘도시농부’ 도전기 (5)

채소 지주로 ‘나무젓가락’을 준비하다니…

도시농부 정현선(왼쪽)·김유진씨가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5월 중순, 2주 만에 찾은 밭은 완전히 정글이 되어 있었다. 청상추와 적상추, 치커리, 아욱이 쑥쑥 자라 땅을 다 덮어 버린 것이다. 특히 배추와 열무는 어쩜 이렇게 빨리 자랐는지 거의 나무 수준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도 5월의 변덕스런 날씨가 한몫을 한 듯싶다.

 쭈그리고 앉아 잎을 땄다. 상추와 치커리는 가운데 작은 잎 3~4장만 남기고 모두 수확했고 아욱은 손바닥 반만 한 잎을 줄기까지 잘라냈다.

 “쑥갓 안 심으신 분~!” 열심히 잎을 따는데 옆에서 홍석경(56)·홍석남(53)씨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자매가 함께 밭에 오는 것이 무척 좋아 보이는, 우리 밭 식구들이 ‘홍자매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분들이다. “네포기 줄텐께 사이좋게 두포기씩 나눠 드쇼잉!” 옆 밭을 일구는 부부에게 쑥갓을 건네는 홍자매님의 구수한 사투리가 정겹다. 이렇게 나눠 먹는 맛도 주말농사의 묘미다.

 배추와 열무는 두손으로 힘껏 뽑았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키워 잎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다. 조금 뜯어 맛을 보니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청벌레 녀석들도 이 맛을 알고 잎을 갉아 먹었겠지. 그래, 나눠 먹자. 너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 수확하고 보니 라면상자로 세상자 분량이나 나왔다. “이건 뭐 ‘수확의 기쁨’이 아니라 ‘수확의 공포’네요!” 옆 밭을 경작하는 황용씨(36)의 너스레에 모두가 공감하며 깔깔 웃었다.

 배추와 열무를 뽑아낸 자리에는 다시 열무 씨앗을 뿌렸다. 김치도 담그고 나물도 무치려면 열무가 모자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배 도시농부들도 이렇게 시나브로 농사에 중독되어 갔을까.

 그동안 쑥쑥 자란 것은 내가 심은 채소뿐만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은 풀들도 그만큼 잘 자라 땡볕에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야 했다. ‘잡초는 뿌리까지 완전히 캐야 한다’는 조언대로 열심히 호미질을 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누가 이것들을 잡초라 이름 붙였을까. 사실 이제껏 우리 밭에 가장 많이 난 풀은 냉이, 씀바귀, 비름처럼 일부러 사다 먹는 녀석들인데. ‘하늘은 재능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天不生無祿之人),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地不長無名之草)’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떠올리니 풀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풀을 맨 다음 순서는 지주 세우기. 한데 여기서 또 한번 나의 무지가 탄로나고 말았다. 열매채소에 지주를 세운다는 공지에, 나는 별생각 없이 집에서 나무젓가락을 한움큼 챙겨 온 것이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포복절도하는 이웃 농부들. “애걔, 이걸로 지주하게?” 선배 농부들은 한참을 껄껄 웃다가 쇠파이프로 된 지주를 주셨다. 가지·방울토마토 등 무거운 열매가 달리는 채소에는 한포기에 하나씩 세웠고, 비교적 가벼운 고추는 세포기당 두개의 지주만 세웠다.

 어느새 무성해진 방울토마토의 곁순도 땄다. 따낸 곁순을 나도 모르게 코로 갖다 대니 음~ 토마토 향기가 잎에서도 그대로 났다. ‘잎이든 열매든 제 몸에서는 모두 같은 향을 내는 진솔한 방울토마토처럼 살고 싶다.’ 나는 오늘도 밭에서 사소한 것에 감동하며 개똥철학을 세웠다.

 김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