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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과 함께하는 삶

자연과 동화되어 더불어 사는 삶

자연과 동화되어 더불어 사는 삶
환경농업을 이어가는 문당리 생태 마을

마을 구성원 모두가 환경을 생각하는 ‘생태주의’에 기초해 있고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 홍성 문당리 마을. 이들은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인생이 두 배로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취재 협조│생태주의 생활공작실


빛바랜 짚단들로 채워진 추수 후의 빈 논은 밀레의 <만종>만큼이나 고즈넉하고 서정적이다. 서울에서 꼬박 2시간 30분을 달려 다다른 충남 홍성 홍동면의 문당리 마을. 여느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지만 띄엄띄엄 작은 막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바로 오리들이 사는 집. 문당리는 오리를 풀어놓아 화학 비료를 대신하는 오리농법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유기농 쌀 생산지다. 수확이 끝난 터라 오리를 볼 수는 없었지만 여름 내 논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오리 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문당리는 충청도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자연 환경은 물론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동네였지만 그런 그곳이 요즘에는 1년 내내 외지 사람들로 붐벼 농한기인 겨울에도 분주한 모습이다. 유기농법의 메카로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대체에너지 개발과 마을 1백 년 계획서를 작성할 만큼 미래를 내다보는 마을로 변모한 것이다.


사람·농촌·생명을 살리는 길

이런 변화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을 키우기 위한 교육 철학을 기본으로 농업 교육이 이루어지는 풀무학교 출신의 주형로 씨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농약과 화학 비료로 이루어지는 관행 농법 일색이었던 이곳에 유기농을 하겠다고 나선 주형로, 정예화 씨 부부를 바라보던 마을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옆집 논에 농약을 뿌리면 흙과 지하수로 스며들고 바람에 날릴 것이니 제 아무리 유기농을 한다고 해도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또 허리 펼 틈도 없이 자라는 잡초들이며, 소출도 너무 적어 포기하려는 찰나, 풀무학교의 홍순명 교장이 일러준 오리농법은 ‘생태 마을’의 기본 꼴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리들 덕분에 손수 뽑아야 했던 잡초 뽑기가 훨씬 수월해졌고 각종 해충을 잡아먹어 충해를 방지하고 분뇨 배설로 자연스레 벼 생육을 위한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완벽한 유기농을 위해서는 ‘땅’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뜻을 같이 했고, 지금은 문당리 부근 땅 자체가 모두 유기인증을 받은 상태다. 이 지역에서 나는 생산물은 모두 유기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곳 마을 주민들은 유기농법은 대안 농업이 아니라 근원 농법이라고 말한다. 가축과 사람이 눈 똥을 거름으로 땅을 일구고, 그 땅에서 난 곡식과 수확물은 인간과 가축의 먹이가 되고 수확물에서 나온 찌꺼기나 껍데기로는 유용한 비료나 사료를 만드는 순환 구조. 인간과 자연, 인간과 가축, 인간과 인간이 서로 공생공사하면 사는 것이 바로 유기농법이다.

또한 이곳 주민들은 유기농법으로 거둔 이윤을 다시 마을에 환원하고 생태농업의 중요성을 다른 지역 농민들에게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그런 취지로 문당리는 유기농 쌀 재배뿐만 아니라 정미소에서 나온 왕겨를 연료로 떼는 황토찜질방, 풍력발전소를 이용한 전기 사용 등 마을 사람들이 기금을 모아 마련한 동네 시설물들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바이오 가스보일러, 풍력발전소, 왕겨보일러, 태양광 발전기 등 대체에너지를 이용한 생태 집짓기와 자연 정화 연못은 도시 귀농민들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들.


도시에서 귀농한 이들은 자연스레 농사를 배우며 친화되고 있고 유기농 밀로 빵을 만들면서 이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도시에서 배운 사람들의 지식과 농사를 지으며 몸소 체득한 농부들이 하나된 홍동면은 인간과 생물이 모두 건강해지는 자연 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농업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문당리 마을. 앞으로의 꿈이라면 이 모든 자산들을 어느 것 하나 해치지 않고 고스란히 아들 세대들에게 물려주고 좀 더 체계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까사리빙 2005년 1월 l 포토그래퍼 선우형준, 이규열, 김황직 l 에디터 모덕진, 한예준 l CASA 모덕진, 한예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