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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뉴스

연 1억원 소득 올리는 이훈길씨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토마토

연 1억원 소득 올리는 이훈길씨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토마토 아파트단지서 게릴라식으로 판매”

EP& 농촌진흥청 공동기획 | 농업 벤처 탐방

토마토 모종.

중소제조업 분야에는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강소기업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기업을 말한다. 우리 농업에도 작지만 강한 ‘강소농’이 있다. 경기도 양주에서 애호박과 토마토의 친환경 시설재배를 통해 지난해 1억여원의 소득을 올린 이훈길씨(47)를 찾았다.

지난 3월17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전날까지 바람이 꽤 불면서 싸늘했던 날씨가 화창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들판으로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과 양주시 농업기술센터의 ‘맞춤형 시비’ 기술지원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서자 토마토와 오이 모종이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한 뼘 정도 자란 토마토 모종에 물을 주고 있던 이훈길씨는 “모종을 심은 지 이제 5일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1ha의 비닐하우스에서 애호박으로 6900여만원, 토마토로 32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인근의 비슷한 규모의 농가보다 30% 정도 많은 실적이다. 사실 이씨는 귀농 7년차인 초보 농부다. 그는 “햇수로는 7년째지만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3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내의 조그만 창고의 벽에는 ‘미생물제 사용 실천’, ‘목초액을 통한 병충해 방제’, ‘채소의 생육 한계점과 토양’ 등에 대한 깨알 같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또 ‘농약을 치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의식전환이 친환경이다’, ‘국가식량 안보의 첨병이 되자’와 같은 그가 직접 쓴 표어도 보였다.

그가 귀농한 것은 2005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학원을 운영하며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귀농의 계기는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집에 들어오시지 않고 비닐하우스에서 거의 사시다시피 하는 거예요.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보다는 부모님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귀농을 결심하게 된 거죠.”

친환경 농법 도입 4년째인 이훈길씨는 농약을 치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의식전환이 친환경 농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 사진 : 유진행
그의 아버지는 결사반대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의 꿈을 알고 있었던 아내는 흔쾌히 따랐다. 그는 사업을 정리하고,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았다.그 돈으로 농사지을 땅을 임대하고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주요 작물은 양주의 특산물인 애호박과 엽채류 채소로 정했다.

“농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냥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농약 칠 때 되면 농약 치고, 화학비료도 뿌렸고요. 그야말로 관행농법이었죠.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 했어요.”

관행농법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

2007년 그가 관행농법을 포기하고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게 된 일대 사건이 터졌다. 그가 생산한 시금치에서 금지 농약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각 지역의 도매시장에서 이뤄지는 농산물품질관리원의 샘플검사에 걸린 것이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사용이 금지된 농약인 줄 몰랐어요. 농약상에서 버젓이 팔고 있었고, 다른 농민들도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는 바로 친환경 농법 배우기에 나섰다. 그때 만난 것이 양주시 농업기술센터였다. 기술센터의 존재조차 몰랐던 그는 처음 참여한 교육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특별히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교육에 참여했어요. 비어 있는 머리를 채우자는 생각이었죠. 다른 것은 어려워서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낙엽을 이용해 친환경 퇴비를 만드는 방법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낙엽을 넣고 땅을 갈아주면 땅심도 좋아지고, 통기성이 좋아 토양보호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거였죠. 천덕꾸러기인 줄 알았던 낙엽이 그렇게 귀한 줄 몰랐어요.”

낙엽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서울의 각 구청에는 시내에서 수거한 낙엽이 몇 톤씩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 한 통화로 몇 트럭분의 낙엽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낙엽과 볏짚을 땅에 깔고 트랙터로 여러 차례 갈아 흙과 골고루 섞이도록 했다.

다른 농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인근에서 친환경 농법을 도입한 농민은 그가 유일했다. 가장 큰 조력자였던 그의 아버지 역시 친환경 농법 도입을 극구 만류했다.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면 생산량도 줄어들고 어지간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아버지와 엄청 싸웠어요. 다른 농민들처럼 아버지도 오랫동안 해온 관행농법을 쉽게 포기하기 힘들었던 거죠.”

그는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한 첫해인 2008년 애호박 한 품종으로 80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하지만 다음해인 2009년에는 소득이 5000여만원으로 급격히 줄었다.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하면서 생산량이 급감했고, 애호박 단일 품종만 생산한 게 화근이었다. 그가 지난해 토마토를 추가 도입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애호박은 계절별로 가격 차이가 너무 컸어요. 그 차이를 메울 작물이 필요했죠. 어떤 작물을 할까 고민하다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목한 토마토로 결정했어요. 애호박보다 단위 면적당 수입도 높았고, 토마토와 애호박의 연작으로 수익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봤어요.”

그는 1ha 중 0.3ha에는 토마토를 심었다. 그리고 친환경적인 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작정 덤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먼저 시험재배를 했다. 그는 비닐하우스 한쪽에 토마토 시험재배 지역을 만들었다. 그리곤 벌레가 먹든 말든 그대로 놔두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실증시험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비닐하우스 외부에서 들어온 벌레들이 더 많았다. 그 벌레들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면 되겠다 싶었다.

토마토 모종을 심은 비닐하우스 내부(왼쪽)와 토마토를 발효시켜 친환경 미생물제를 만드는 항아리.
그는 토마토를 본격적으로 재배하면서 수정벌을 제외하고 다른 벌레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비닐하우스 입구에 방충망을 설치했다. 그래도 생기는 벌레는 직접 손으로 잡거나 미생물 제제를 이용해 퇴치했다. 농업기술센터가 물과 친환경 영양제를 자동으로 공급하는 관수·관비 재배시스템과 친환경 미생물제를 지원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게릴라식 판매로 직거래

친환경 토마토를 재배했지만 더 높은 장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판로였다. 도매시장에 내놓았다간 제값을 받기 힘들게 분명했다. 그는 직접 판매에 나서기로 했다.

판로 확보에는 그의 아내가 앞장섰다. 아는 지인을 통해 교회와 성당의 전도사업을 활용해 유통망을 넓혔다. 그가 생산한 토마토를 교회와 성당이 판매하고 약간의 수수료를 취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도매시장에 내놓는 토마토는 익기 전에 땁니다. 하지만 직접 판매를 할 경우에는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따야 합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키워 잘 익은 토마토는 일반 토마토에 비해 맛이 확실히 다릅니다. 인기가 상당했어요.” 하지만 0.3ha에서 쏟아져 나오는 토마토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도매시장에 넘기자니 소비자 손에 닿을 때쯤이면 토마토가 물러 터질 상황이었다.

그의 아내가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에서 게릴라식 판매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하기 싫었어요. 창피하게 어떻게 파냐고 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는 아내와 함께 토마토를 한 트럭 싣고 서울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그리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먹어보라며 토마토를 하나씩 건넸다. 반응은 금세 왔다. 토마토를 한 입 베어먹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 상자씩 사가면서 트럭 한 가득 실렸던 토마토가 순식간에 팔렸다. 이후 토마토를 사간 사람들의 입소문 덕분에 그는 몇 차례 더 그 아파트 단지에서 토마토를 직거래 판매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토마토를 직거래로만 판매해 300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다.

올해 그는 토마토의 재배면적을 지난해보다 3배 정도 늘렸다. 친환경 농법이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자신감에서다.

다른 수익모델 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가족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 개발이 그중 하나다. 인근의 관광지와 목장, 토마토 수확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득 증대에 나선다는 것이다. 올해에는 자체 브랜드도 내놓을 계획이다.

농업기술센터 통해 성과 맺어

그의 성공은 친환경 농법의 도입과 생산물 직거래의 실천 등과 같은 경영혁신, 농업기술센터의 체계적인 기술지원 등에서 비롯됐다.

낙엽과 볏짚, 한약 부산물, 친환경 미생물 등을 활용한 친환경 농법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첫번째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그가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토마토 등은 일반 토마토에 비해 30% 정도 비싸게 팔렸다. 소비자와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의 블로그에 토양 가꾸기에서부터 열매 수확까지 모든 것을 기록한 것도 한몫을 했다. 그의 블로그에는 지난해 11월 낙엽을 깔기 시작한 때부터 지난 3월9일 모종을 심기까지의 모습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이훈길(왼쪽에서 세번째)씨가 양주시 농업기술센터 직원들과 토마토의 친환경 재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친환경 농법을 배우기 위한 그의 열정도 성공과 무관치 않다. 그는 친환경 농법을 배우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2008년에는 충북 괴산의 자연농업학교에서 농약 대신 친환경 미생물을 통해 병충해를 방제하는 방법을 배웠다. 2009년에는 농협대학에서 친환경 채소 분야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고, 지난해에는 양주시 농업기술센터 바이오대학에서 e-비즈니스 분야와 천적을 활용한 친환경 농법 교육과정을 거쳤다. 올해에는 기술센터 바이오대학원에 등록을 마친 상태다.
그는 요즘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인근 시설재배 농가들이 3월 말부터 토마토 모종 식재에 나서지만 그는 그보다 2주 먼저 모종을 심었다. 다른 농가의 비닐하우스는 2중으로 돼 있지만 그는 3중으로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열 손실을 막았기 때문이다. 또 소득 증대를 위해 토마토 모종 사이에 무도 파종을 했다.

두번째 성공요인은 아파트 단지에서의 게릴라식 판매와 지인을 홍보 도우미로 활용해 단골 고객을 확보한 직거래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직거래는 유통비용이 없기 때문에 더 좋은 값을 받고 팔 수 있었으며, 소비자들은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올해 그의 가장 큰 고민 역시 판로 개척이다. 그는 농협의 유통망을 활용하거나 직접 매장을 개설하는 등의 직거래 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또 양주시 애호박연구회 등에 가입해 지역 농민들과 농사 관련 정보를 교류하고, 작목반 등을 통해 판로를 개척한 것도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도 친환경 농법 도입 3년 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농업기술센터로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기술센터를 통해 천적을 활용한 친환경 방제, 관수 설비와 같은 시설 등을 지원받았다. 그는 “모르는 게 있으면 무작정 기술센터를 찾아갔다”며 “기술센터에서는 항상 반갑게 맞아주며 궁금해하는 기술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마침 인터뷰를 하던 중에 이씨의 비닐하우스를 찾은 안종출 양주시 농업기술센터의 기술기획팀장은 “이씨는 평생 동안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며 “농민을 위한 조직인 기술센터를 다른 농민들도 잘 활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잘 버는 농부보다는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로 다른 사람들이 더 행복해하기를 바랐다. “친환경 농법을 시행하면서 농사는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이익의 5%를 소외 이웃을 위해 쓸 생각입니다. 향후에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꿈입니다.”

/이코노미플러스
경기 양주 = 장시형 기자